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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에 서울 S 보육원 들어갈 때 찍은 유진수 대표 사진 [본인 제공]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나는 보육원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보육원 형들한테 성폭행 생애최초대출 당했습니다. 보육원 원장이나 총무, 선생님께 알릴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하는 즉시 심한 구타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유진수 고아시설피해생존자인권신원연합 대표는 지난 27일, 29일, 31일 세 차례에 걸쳐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여자 보육원생들이 원장의 친척인 총무나 보육교사에게 성폭행당하는 일도 즉석복권 1등 있었다"면서 "당시 보육원에서 성폭행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지만, 당국은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고아들 피해에 대해서는 당국과 보육원 측의 사과와 피해보상 등이 있어야 한다"면서 "우리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고아들의 '빼앗긴 권리' 회복을 위해 유기고아특별법(유기·수용시설 피해 아동 등의 권리회복 및 보호 지 대출규제 원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1968∼196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7살 무렵부터 보육원에서 성장했다. 서울의 경기상고를 거쳐 부여의 농업고등학교에서 공부했고, 연세대 원주 캠퍼스 재활의학과를 졸업했다. 이후에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으며, 2016년에 뜻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의료협동조합을 만들어 올해 3월까지 캐디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고아들의 억울함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유기고아특별법 제정운동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유진수 대표 [윤근영 기자 촬영]
-- 고향은 어디인가.
▲ 서울에서 양도담보 태어났다. 당시 서울의 모래내(현 남가좌동), 후암동, 성북동 등에서 어머니와 살았던 기억이 있다. 나의 생년월일은 정확하지 않다. 호적상 1969년생 11월생으로 돼 있지만 보육원이 만든 것이다. 나는 1969년 또는 1968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 아버지는 학식 있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장례식 때 할아버지 집에 갔는데, 굉장히 넓은 잔디밭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부자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는 여고를 졸업했던 분인데, 아버지 집의 비서로 일하다 아버지와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셨나.
▲ 아버지가 박정희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숨진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가 당시 사형선고를 받았는지 아니면 의문사하셨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 아버지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근거가 있나,
▲ 어머니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집안에 숨겨줬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고초를 겪은 듯하다. 1975년 아카시아꽃이 저물던 시점이었다. 말끔한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검은 승용차를 타고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고는 어머니를 강제로 차에 태우고는 어디론가 데려갔다. 어머니는 저녁쯤에 돌아와서는 나를 부둥켜안고 "그이가 빨갱이가 됐다는 게 말도 안 돼"라고 하면서 목 놓아 울었다.
-- 그 이후에 어떻게 됐나.
▲ 며칠 후에 어머니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때 나도 따라갔다. 너무 어려서 집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공분실에서 나는 한동안 경찰 아저씨와 함께 숙식 생활을 했다. 대공분실의 긴 복도에서 뛰어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았나.
▲ 어머니가 대공분실에 끌려가서 조사받을 때 나는 서울시립아동보호센터를 거쳐 서울의 S 보육원에 보내졌다. 어머니는 1976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 보육원에 찾아온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는 나에게 "곧바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오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때 어머니는 보육원에 찾아왔다가 나를 못 만나고 그냥 갔다. 그때 어머니는 보육 선생님께 "(앞으로) 찾아오기 힘들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나는 어머니와 단절됐다.
과거의 남영동 대공분실의 현재 모습.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뀌었다. [연합뉴스 사진]
-- 어머니가 살아 있는데 고아가 된 이유는.
▲ 어머니가 나를 사망 처리하고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서울의 00 경찰서 실종수사팀에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불과 몇개월 만에 어머니의 소재지를 알아냈다. 그런데 어머니는 찾아온 경찰관에게 "왜 왔느냐. 가라.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강하게 거부했고, 경찰을 문전 박대했다고 한다. 경찰은 어머니가 재혼했고 꽤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 집이 어느 지역에 있는지 짐작은 하지만,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경찰이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 어머니는 왜 자식을 사망 처리했나.
▲ 내 짐작에 어머니가 아버지 재산을 모두 상속받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 보육원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
▲ 남영동 대공분실의 경찰 아저씨가 나를 서울시립아동보호센터에 데려갔다 그 센터는 서울 서대문구(지금은 은평구) 응암동에 있었다. 3개월 후에는 S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당시 고아들은 서울시립아동보호센터를 통해 전국의 보육시설에 배치됐다.
-- 서울시립아동보호센터에 대한 기억이 있나.
▲ 어느 날 대공분실 경찰 아저씨가 오는 것을 봤다. 나는 쇠창살을 붙잡고 "아저씨, 나를 꺼내주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때 어떤 사람이 조용히 하라는 고함과 함께 나를 발로 찼다. 내 몸이 붕 떴다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머리가 바닥에 부닥치면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그 뒤에 조리돌림당했는데, 그때 어떤 형이 나를 보호해줬다.
경기 상고 본관의 모습 [SNS 캡처 사진]
-- 본인은 보육원에 살면서 어느 학교에 다녔나.
▲ 나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경기상고 컴퓨터 정보처리학과에 들어갔다. 그때 고교입학 연합고사에서 상당히 좋은 점수를 받아서 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경기상고 1학년을 다니다 부여에 있는 농고로 전학 가야 했다. 우리 보육원이 부여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서 경기상고에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 왜 거절당했나.
▲ 그들은 무조건 모두 함께 내려가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고 했다. 보육원 원장과 총무 등은 아이들이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자기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여에 다른 상고가 있었는데도 그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내가 경기상고를 졸업했다면 금융기관 취업도 비교적 수월했을 것이다.
-- 농고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됐나.
▲ 물리치료사를 양성하는 전문대 3년 과정을 마치고, 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의 보건 계열 재활학과에 편입했다. 이 학교에서 2년 동안 추가로 공부해서 졸업장을 받았다. 이후 물리치료사로 계속 일해왔다.
-- 다른 진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나.
▲ 고교 시절 교련 선생님이 부사관 장학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하사관학교에 들어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 학교에 들어가려면 신원보증이 필요한데, 고아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포기해야 했다.
서울 S 보육원 시절 단짝 고아 친구와 함께한 유진수 대표(오른쪽) 중학교 1학년 때쯤 S보육원 방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유 대표는 밝혔다. [본인 제공]
-- 보육원에서 성폭행, 성추행당한 적이 있나.
▲ 서울 S 보육원 시절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4년간 성폭행당했다. 가해자는 같은 보육원의 중고생 형들이었다. 가해자는 모두 4명이다.
-- 어디서 성폭행당했나.
▲ 다른 아이들에게는 방에서 나가라고 하고는 문 걸어 잠그고 성폭행했다. 보육원 내 으슥한 곳에서도 그런 짓을 했다. 밤에 잠을 잘 때 오라고 해서 성폭행을 하기도 했다. 내가 성폭행당한 횟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다. 특히 한 형이 심하게 성폭행을 많이 했는데, 그를 안 만나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 너무 어린 나이여서 저항하기 어려웠나.
▲ 저항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고통스럽다는 표시를 하면 주먹이 얼굴로 날아들기 때문이다. 폭행을 많이 당하면 저항은 생각하기 어렵다.
-- 보육원 원장이나 총무, 교사에게 알리지 않았나.
▲ 그건 불가능하다. 이야기하는 즉시 형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하기 때문이다. 친구들한테도 말하지 못했다. 관리자들의 귀에 들어가면 나는 고초를 겪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육원 관리자들은 애당초 이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 당국과 경찰 등에 신고할 생각은 안 했나.
▲ 마찬가지로 엄청난 폭행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신고한다고 해서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가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 그 성폭행한 형들은 지금 뭐 하나.
▲ 가장 심하게 성폭행했던 사람은 몇 년 전 신림사거리에서 노숙하다 죽었다. 한번은 내가 음식을 싸 들고 그에게 가서 함께 기도했는데,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 가해자도 어느 한 편으로는 피해자다. 그들도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는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로 바뀐다.
유진수 대표가 2년여 기간 지냈던 부여의 보육원. 왼쪽은 보육원, 오른쪽은 원장 사택. 유진수 대표와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이 보육원에서 2년여 정도 같이 살았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제공]
--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보육원에서 성폭력은 문화였다고 한 적이 있는데.
▲ 맞는 말이다. 보육원의 선배들이 후배를 성폭행하고, 관리자들도 성폭행하거나 묵인하는 일이 꽤 있었다.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다. 어떤 남자 원생은 세자매를 성폭행한 일도 있었는데, 그 가해자가 내 동기생이었다. 세자매 중 첫째와 둘째는 중학생이었고, 셋째는 정확하지 않지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보육원의 원장, 총무, 교사가 원생들을 성폭행한 일이 있었나.
▲ 내가 자란 S 보육원의 총무는 원장의 친척이었다. 그는 한 여자 원생을 성폭행했다. 보육원의 바로 옆에 있는 관사에서 부인, 아들과 같이 살면서 그런 짓을 했다. 성폭행 소문이 나자 그는 여자아이가 자기를 유혹했다고 했다.
-- 여성 보육교사가 남자 원생을 성폭행하는 일도 있었나.
▲ 보육사로 일하는 중년 아주머니가 고등학교 남자아이를 성폭행한 일도 있었다. 그 보육교사는 미취학 아이를 두고 있었으니 40대 중반 정도는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피해 남자 원생은 가해자가 됐다. 세자매를 성폭행한 내 동기생이 이 사람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유진수 대표 [윤근영 기자 촬영]
-- 지금 보육시설에서는 과거와 달리 성폭행이 많이 줄어든 것 아닌가.
▲ 보육시설 등에서 성폭행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인구수가 많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심각하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부산에서 보육원의 관리자가 여자 원생을 7년간 성폭행한 일이 최근에 밝혀졌다. 몇 년 전 충북에서는 원생 간의 성폭행이 있었다.
-- 당국과 한국아동복지협회 등은 주기적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도 하고, 아이들에게 휴대전화도 있어서 성폭행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 이런 조사를 할 때 보육시설의 관리자가 현장에 있는 경우가 많다. 설문조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이유다. 실태를 정확히 알려면 조사자가 며칠 동안 보육시설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조사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전수조사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고아 단체와 당국이 함께 위원회를 만들어서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당국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보육시설 내 성폭행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이제는 고아 산업을 끝내야 한다. 보육시설 관리자들이 버려진 남의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본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유진수 대표 1차 인터뷰 질문-답변 끝)
keunyoung@yna.co.kr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연합뉴스 사진]
[※ 편집자 주= 연합뉴스는 공정하고 객관적 보도를 위해 유진수 대표의 증언과 관련해 보육시설 단체인 한국아동복지협회와 당국, 고아권익연대에 관련 질의를 했습니다. 그 결과 아동복지협회와 고아권익연대가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 유진수 대표의 증언은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됐다고 생각하나
▲ 성인들도 집단 수용 시설에 모여 있으면 야만적 문화와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하물며 부모도 없는 아동들을 집단 수용해서 관리하면 너무 뻔한 것 아닌가. 나는 보육원에 대해 이론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다. 눈으로 보고, 뼛속 깊이 경험한 고아 출신이다. 2018년도 고아권익연대 설립이후 나는 고아원에서는 성폭력과 폭력이 범죄가 아닌 문화일 수밖에 없기에 아동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 그 당시 성폭행이 많았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보육시설에서는 비정상적이고 해괴한 상하 질서가 형성된다. 이런 상황에서 힘 있는 부류가 성폭행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성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니 보다 쉽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
-- 당시 관리와 감독의 책임이 있는 당국은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그동안 역대 정부는 고아원이 좋다고 홍보했다. 그러니 보육원 실태를 은폐할 수밖에 없다. 아동 성폭행과 인권 유린을 저지른 형제복지원과 덕성원을 운영한 일가들이 현재에도 다른 형태의 복지사업을 하고 있지 않은가.
-- 유 대표는 지금도 성폭력, 성추행 사건 등이 보육원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세상에 알려지는 보육원 내 성폭력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한다. 은밀하고 치밀하고 지능적인 방식으로 진화했다. 가스라이팅, 그루밍(길들이기) 같은 고도의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아동복지협회 로고 [SNS 캡처 사진]
한국아동복지협회 입장
이번에 제기된 피해 주장은 50여 년 전 특정 복지시설에서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 일로, 해당 시설은 이미 폐지돼 관련 자료가 존재하지 않으며, 본 협회 또한 해당 시설의 운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을 먼저 밝힙니다.
당시 기록이나 관계자의 증언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개별 경험에 기반한 주장을 객관적 사실로 판단하거나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데는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거나, 전체 복지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하는 것은 또 다른 왜곡과 오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1970~1980년대 복지시설 환경은 오늘날과 같은 인권 기준이나 행정지원 체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못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열악함은 사회 전반의 제도적·문화적 한계에 따른 것이며, 복지시설만이 유독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협회는 과거의 복지 환경이 오늘날 기준에 비추어 부족하였음을 인정하되, 당시 모든 보육환경을 일반화하거나, 특정 시설에 대한 일방적 주장을 전체 복지시설의 구조적 문제로 해석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아동복지협회는 전국 아동복지시설의 정책 지원과 권익 증진을 위한 민간 조직으로, 개별 시설의 운영·관리나 과거 사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는 기관은 아닙니다. 다만, 협회는 제기된 사회적 우려가 사실과 다른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을 수 있음을 우려하며, 이러한 오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객관적이고 공정한 검토와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협회 차원의 자료 제공 등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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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자 보육원생들이 원장의 친척인 총무나 보육교사에게 성폭행당하는 일도 즉석복권 1등 있었다"면서 "당시 보육원에서 성폭행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지만, 당국은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고아들 피해에 대해서는 당국과 보육원 측의 사과와 피해보상 등이 있어야 한다"면서 "우리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고아들의 '빼앗긴 권리' 회복을 위해 유기고아특별법(유기·수용시설 피해 아동 등의 권리회복 및 보호 지 대출규제 원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1968∼196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7살 무렵부터 보육원에서 성장했다. 서울의 경기상고를 거쳐 부여의 농업고등학교에서 공부했고, 연세대 원주 캠퍼스 재활의학과를 졸업했다. 이후에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으며, 2016년에 뜻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의료협동조합을 만들어 올해 3월까지 캐디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고아들의 억울함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유기고아특별법 제정운동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유진수 대표 [윤근영 기자 촬영]
-- 고향은 어디인가.
▲ 서울에서 양도담보 태어났다. 당시 서울의 모래내(현 남가좌동), 후암동, 성북동 등에서 어머니와 살았던 기억이 있다. 나의 생년월일은 정확하지 않다. 호적상 1969년생 11월생으로 돼 있지만 보육원이 만든 것이다. 나는 1969년 또는 1968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 아버지는 학식 있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장례식 때 할아버지 집에 갔는데, 굉장히 넓은 잔디밭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부자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는 여고를 졸업했던 분인데, 아버지 집의 비서로 일하다 아버지와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셨나.
▲ 아버지가 박정희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숨진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가 당시 사형선고를 받았는지 아니면 의문사하셨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 아버지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근거가 있나,
▲ 어머니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집안에 숨겨줬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고초를 겪은 듯하다. 1975년 아카시아꽃이 저물던 시점이었다. 말끔한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검은 승용차를 타고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고는 어머니를 강제로 차에 태우고는 어디론가 데려갔다. 어머니는 저녁쯤에 돌아와서는 나를 부둥켜안고 "그이가 빨갱이가 됐다는 게 말도 안 돼"라고 하면서 목 놓아 울었다.
-- 그 이후에 어떻게 됐나.
▲ 며칠 후에 어머니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때 나도 따라갔다. 너무 어려서 집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공분실에서 나는 한동안 경찰 아저씨와 함께 숙식 생활을 했다. 대공분실의 긴 복도에서 뛰어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았나.
▲ 어머니가 대공분실에 끌려가서 조사받을 때 나는 서울시립아동보호센터를 거쳐 서울의 S 보육원에 보내졌다. 어머니는 1976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 보육원에 찾아온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는 나에게 "곧바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오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때 어머니는 보육원에 찾아왔다가 나를 못 만나고 그냥 갔다. 그때 어머니는 보육 선생님께 "(앞으로) 찾아오기 힘들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나는 어머니와 단절됐다.
과거의 남영동 대공분실의 현재 모습.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뀌었다. [연합뉴스 사진]
-- 어머니가 살아 있는데 고아가 된 이유는.
▲ 어머니가 나를 사망 처리하고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서울의 00 경찰서 실종수사팀에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불과 몇개월 만에 어머니의 소재지를 알아냈다. 그런데 어머니는 찾아온 경찰관에게 "왜 왔느냐. 가라.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강하게 거부했고, 경찰을 문전 박대했다고 한다. 경찰은 어머니가 재혼했고 꽤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 집이 어느 지역에 있는지 짐작은 하지만,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경찰이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 어머니는 왜 자식을 사망 처리했나.
▲ 내 짐작에 어머니가 아버지 재산을 모두 상속받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 보육원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
▲ 남영동 대공분실의 경찰 아저씨가 나를 서울시립아동보호센터에 데려갔다 그 센터는 서울 서대문구(지금은 은평구) 응암동에 있었다. 3개월 후에는 S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당시 고아들은 서울시립아동보호센터를 통해 전국의 보육시설에 배치됐다.
-- 서울시립아동보호센터에 대한 기억이 있나.
▲ 어느 날 대공분실 경찰 아저씨가 오는 것을 봤다. 나는 쇠창살을 붙잡고 "아저씨, 나를 꺼내주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때 어떤 사람이 조용히 하라는 고함과 함께 나를 발로 찼다. 내 몸이 붕 떴다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머리가 바닥에 부닥치면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그 뒤에 조리돌림당했는데, 그때 어떤 형이 나를 보호해줬다.
경기 상고 본관의 모습 [SNS 캡처 사진]
-- 본인은 보육원에 살면서 어느 학교에 다녔나.
▲ 나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경기상고 컴퓨터 정보처리학과에 들어갔다. 그때 고교입학 연합고사에서 상당히 좋은 점수를 받아서 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경기상고 1학년을 다니다 부여에 있는 농고로 전학 가야 했다. 우리 보육원이 부여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서 경기상고에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 왜 거절당했나.
▲ 그들은 무조건 모두 함께 내려가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고 했다. 보육원 원장과 총무 등은 아이들이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자기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여에 다른 상고가 있었는데도 그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내가 경기상고를 졸업했다면 금융기관 취업도 비교적 수월했을 것이다.
-- 농고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됐나.
▲ 물리치료사를 양성하는 전문대 3년 과정을 마치고, 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의 보건 계열 재활학과에 편입했다. 이 학교에서 2년 동안 추가로 공부해서 졸업장을 받았다. 이후 물리치료사로 계속 일해왔다.
-- 다른 진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나.
▲ 고교 시절 교련 선생님이 부사관 장학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하사관학교에 들어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 학교에 들어가려면 신원보증이 필요한데, 고아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포기해야 했다.
서울 S 보육원 시절 단짝 고아 친구와 함께한 유진수 대표(오른쪽) 중학교 1학년 때쯤 S보육원 방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유 대표는 밝혔다. [본인 제공]
-- 보육원에서 성폭행, 성추행당한 적이 있나.
▲ 서울 S 보육원 시절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4년간 성폭행당했다. 가해자는 같은 보육원의 중고생 형들이었다. 가해자는 모두 4명이다.
-- 어디서 성폭행당했나.
▲ 다른 아이들에게는 방에서 나가라고 하고는 문 걸어 잠그고 성폭행했다. 보육원 내 으슥한 곳에서도 그런 짓을 했다. 밤에 잠을 잘 때 오라고 해서 성폭행을 하기도 했다. 내가 성폭행당한 횟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다. 특히 한 형이 심하게 성폭행을 많이 했는데, 그를 안 만나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 너무 어린 나이여서 저항하기 어려웠나.
▲ 저항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고통스럽다는 표시를 하면 주먹이 얼굴로 날아들기 때문이다. 폭행을 많이 당하면 저항은 생각하기 어렵다.
-- 보육원 원장이나 총무, 교사에게 알리지 않았나.
▲ 그건 불가능하다. 이야기하는 즉시 형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하기 때문이다. 친구들한테도 말하지 못했다. 관리자들의 귀에 들어가면 나는 고초를 겪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육원 관리자들은 애당초 이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 당국과 경찰 등에 신고할 생각은 안 했나.
▲ 마찬가지로 엄청난 폭행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신고한다고 해서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가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 그 성폭행한 형들은 지금 뭐 하나.
▲ 가장 심하게 성폭행했던 사람은 몇 년 전 신림사거리에서 노숙하다 죽었다. 한번은 내가 음식을 싸 들고 그에게 가서 함께 기도했는데,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 가해자도 어느 한 편으로는 피해자다. 그들도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는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로 바뀐다.
유진수 대표가 2년여 기간 지냈던 부여의 보육원. 왼쪽은 보육원, 오른쪽은 원장 사택. 유진수 대표와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이 보육원에서 2년여 정도 같이 살았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제공]
--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보육원에서 성폭력은 문화였다고 한 적이 있는데.
▲ 맞는 말이다. 보육원의 선배들이 후배를 성폭행하고, 관리자들도 성폭행하거나 묵인하는 일이 꽤 있었다.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다. 어떤 남자 원생은 세자매를 성폭행한 일도 있었는데, 그 가해자가 내 동기생이었다. 세자매 중 첫째와 둘째는 중학생이었고, 셋째는 정확하지 않지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보육원의 원장, 총무, 교사가 원생들을 성폭행한 일이 있었나.
▲ 내가 자란 S 보육원의 총무는 원장의 친척이었다. 그는 한 여자 원생을 성폭행했다. 보육원의 바로 옆에 있는 관사에서 부인, 아들과 같이 살면서 그런 짓을 했다. 성폭행 소문이 나자 그는 여자아이가 자기를 유혹했다고 했다.
-- 여성 보육교사가 남자 원생을 성폭행하는 일도 있었나.
▲ 보육사로 일하는 중년 아주머니가 고등학교 남자아이를 성폭행한 일도 있었다. 그 보육교사는 미취학 아이를 두고 있었으니 40대 중반 정도는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피해 남자 원생은 가해자가 됐다. 세자매를 성폭행한 내 동기생이 이 사람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유진수 대표 [윤근영 기자 촬영]
-- 지금 보육시설에서는 과거와 달리 성폭행이 많이 줄어든 것 아닌가.
▲ 보육시설 등에서 성폭행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인구수가 많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심각하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부산에서 보육원의 관리자가 여자 원생을 7년간 성폭행한 일이 최근에 밝혀졌다. 몇 년 전 충북에서는 원생 간의 성폭행이 있었다.
-- 당국과 한국아동복지협회 등은 주기적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도 하고, 아이들에게 휴대전화도 있어서 성폭행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 이런 조사를 할 때 보육시설의 관리자가 현장에 있는 경우가 많다. 설문조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이유다. 실태를 정확히 알려면 조사자가 며칠 동안 보육시설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조사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전수조사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고아 단체와 당국이 함께 위원회를 만들어서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당국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보육시설 내 성폭행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이제는 고아 산업을 끝내야 한다. 보육시설 관리자들이 버려진 남의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본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유진수 대표 1차 인터뷰 질문-답변 끝)
keunyoung@yna.co.kr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연합뉴스 사진]
[※ 편집자 주= 연합뉴스는 공정하고 객관적 보도를 위해 유진수 대표의 증언과 관련해 보육시설 단체인 한국아동복지협회와 당국, 고아권익연대에 관련 질의를 했습니다. 그 결과 아동복지협회와 고아권익연대가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 유진수 대표의 증언은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됐다고 생각하나
▲ 성인들도 집단 수용 시설에 모여 있으면 야만적 문화와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하물며 부모도 없는 아동들을 집단 수용해서 관리하면 너무 뻔한 것 아닌가. 나는 보육원에 대해 이론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다. 눈으로 보고, 뼛속 깊이 경험한 고아 출신이다. 2018년도 고아권익연대 설립이후 나는 고아원에서는 성폭력과 폭력이 범죄가 아닌 문화일 수밖에 없기에 아동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 그 당시 성폭행이 많았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보육시설에서는 비정상적이고 해괴한 상하 질서가 형성된다. 이런 상황에서 힘 있는 부류가 성폭행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성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니 보다 쉽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
-- 당시 관리와 감독의 책임이 있는 당국은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그동안 역대 정부는 고아원이 좋다고 홍보했다. 그러니 보육원 실태를 은폐할 수밖에 없다. 아동 성폭행과 인권 유린을 저지른 형제복지원과 덕성원을 운영한 일가들이 현재에도 다른 형태의 복지사업을 하고 있지 않은가.
-- 유 대표는 지금도 성폭력, 성추행 사건 등이 보육원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세상에 알려지는 보육원 내 성폭력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한다. 은밀하고 치밀하고 지능적인 방식으로 진화했다. 가스라이팅, 그루밍(길들이기) 같은 고도의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아동복지협회 로고 [SNS 캡처 사진]
한국아동복지협회 입장
이번에 제기된 피해 주장은 50여 년 전 특정 복지시설에서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 일로, 해당 시설은 이미 폐지돼 관련 자료가 존재하지 않으며, 본 협회 또한 해당 시설의 운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을 먼저 밝힙니다.
당시 기록이나 관계자의 증언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개별 경험에 기반한 주장을 객관적 사실로 판단하거나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데는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거나, 전체 복지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하는 것은 또 다른 왜곡과 오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1970~1980년대 복지시설 환경은 오늘날과 같은 인권 기준이나 행정지원 체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못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열악함은 사회 전반의 제도적·문화적 한계에 따른 것이며, 복지시설만이 유독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협회는 과거의 복지 환경이 오늘날 기준에 비추어 부족하였음을 인정하되, 당시 모든 보육환경을 일반화하거나, 특정 시설에 대한 일방적 주장을 전체 복지시설의 구조적 문제로 해석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아동복지협회는 전국 아동복지시설의 정책 지원과 권익 증진을 위한 민간 조직으로, 개별 시설의 운영·관리나 과거 사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는 기관은 아닙니다. 다만, 협회는 제기된 사회적 우려가 사실과 다른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을 수 있음을 우려하며, 이러한 오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객관적이고 공정한 검토와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협회 차원의 자료 제공 등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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