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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관과 사통한 첩을 살려준 정종
정종의 아들 중에는 왕세자가 되려다 죽임을 당한 불노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산 아들도 있었다. 지운이라는 인물이었다.
정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뒤에 인덕궁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한 여인을 품었다. 그녀는 인덕궁 소속의 여종 기매였고,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바로 지운이었다.
그런데 기매는 지운을 낳은 뒤에 궁궐을 발칵 뒤집을 만한 섹스 스캔들에 휘말렸다. 이 사건에 대해 실록은 태종 17년(1417년) 8월 8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환자 정사징을 베었다. 정사징은 고려 공양왕 때부터 환자 같지 않다는 말이 취업자금대출 있었는데, 또 회안 대군의 첩을 간통하였고, 인덕궁을 섬기면서 시녀 기매를 간음하였다. 기매는 상왕의 본궁 여종이었다.’
상왕이 알고 기매를 내치니, 정사징이 도망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붙잡히자 곧 베었다. 의금부에서 기매를 아울러 베자고 청하니, 임금이 말했다.
“기매는 상왕에게서 아이를 배어 자식을 낳았으니 차마 베지 개인파산제도 못하겠다.”
의금부 제조 등이 요청하였다.
“기매가 이미 득죄하여 쫓겨났으니, 상왕인들 어찌 아끼겠습니까?”
임금이 그 말을 옳다고 여기어 장차 베려 하였다. 그런데 상왕의 명령으로 베지 못하였다.
사실, 이 섹스 스캔들은 매우 특이한 사건이었다. 환관이라면 의당 남성을 잃은 사람인데 홈플러스인터넷 , 환관이 여인들과 간통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 고려시대 환관 중에는 남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여성과 성관계를 하다 들켜 죽은 사건도 있었다. 정사징도 그런 인물 중에 하나였던 모양이다.
정사징의 성 기능이 어느 정도 살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환관이 된 것을 보면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상가복비 . 따라서 정사징이 아이를 잉태시킬 능력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또한 성 기능이 온전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간통 행위라는 것은 아마도 서로 애무하는 수준에 그쳤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조선시대에 궁녀와 환관이 서로 사랑에 빠져 발각된 사건은 가끔 발생하곤 했다. 그들은 성관계는 불가능했지만, 애무는 가능했기 때문에 그런 형태의 간음을 자녀교육비소득공제 하다 발각되어 사형된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사징의 경우도 그런 사건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환관들도 아내가 있고, 부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사랑을 나눴을 것이고, 정사징과 기매도 그런 행위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환관 정사징은 그런 인물이었는데, 그는 환관이었기 때문에 여인들과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었고, 결국 섹스 스캔들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간음한 여인 중에 상왕의 첩 기매가 있었다.
그렇다면 기매는 왜 후궁 신분을 마다하고 정사징과 간통한 것일까?
1417년 당시 정종은 61세였다. 말하자면 환갑에 이른 노인이었다. 이때는 이미 정안왕후 김씨가 죽은 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정종도 노환에 시달리고 있던 때였다. 그에 비해 기매는 젊은 여인이었다. 말하자면 색욕은 왕성하지만 연애할 대상은 없는 처지였다. 더구나 궁궐 안이기 때문에 남성이라고는 환관들밖에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환관 신분인 정사징이란 자와 눈이 맞았던 것이다.
어쨌든 정사징의 행각은 탄로 났고, 기매도 이 일과 연루되어 궁궐에서 내쫓겼다. 심지어 의금부에서는 그녀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종은 그녀를 죽이지는 말라고 했고, 태종은 형의 부탁에 따라 그녀를 살려줬다. 정종이 그녀를 죽이지 말라고 한 것은 아마도 그녀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기껏 스물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육십이 넘은 늙은이의 첩으로 살기엔 그녀의 젊음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 강제로 승려로 살아야 했던 왕자 지운의 안타까운 죽음
그런데 그녀를 내쫓으면서 그녀가 낳은 아들 지운도 함께 궁궐에서 내친 모양이다. 지운은 궁궐에서 나간 뒤,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아마도 지운은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강제로 승려가 된 듯하다. 어쨌든 지운은 이 사건이 있은 지 7년이 지났을 때, 또 하나의 사건을 벌였다. 그때는 이미 정종도 죽고 태종도 죽은 뒤였다. 실록의 세종 6년(1424년) 4월 23일 기사에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진성 현감 이반이 중 지운을 잡아 왔으므로 의금부에 하옥하도록 명하였다. 지운이라는 자는 공정왕의 시비 기매의 자식이었다. 기매가 항상 음란한 행동을 하므로, 왕이 가끔 곤장으로 때렸다. 지운을 낳았으나, 왕은 ‘자기의’ 자식이 아님을 알았던 까닭으로 여러 아들의 항렬에 넣지 않았다. 왕이 승하한 뒤에 지운은 머리를 깎고 절에 우거하면서 왕자라고 자칭하였다.’
태종이 듣고 불쌍하게 여겨서 의식을 하사하고자 하니, 병조 참의 윤회가 아뢰었다.
“공정왕께서 지운을 아들이라 하지 않으셨는데, 지금 왕자라고 하면 외방에 떠돌아다니게 함이 마땅하지 못하고, 왕자가 아니라고 하면 어찌 은사를 입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옳지 못한가 합니다.”
이에 태종이 말했다.
“나도 역시 의심은 하지만 이것은 분별하기가 퍽 어렵다.”
그러면서 마침내 의식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공정왕이 일찍이 자식이라고 하지 않았던 까닭으로 인하여 지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지금부터 왕자라고 자칭하지 말고 멀리 도망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운이 다시 왕자라는 호칭으로 횡행하면서 폐를 끼치는 까닭으로 잡아오도록 명하였던 것이었다.
이렇듯 세종이 즉시 관원을 풀어 그를 잡아들여 확인해 보니, 과연 기매의 아들이 맞았다.
그는 원래 병이 있어 절에 맡겨진 것인데, 세종은 그를 찾아내어 환속시키려는 시도도 하였다. 그리고 그가 붙잡혔을 때, 세종은 그를 측은하게 여겨 살려줄 생각을 하였으나 중신들은 그를 죽이라고 간언했다. 세종 스스로 생각해도 그의 존재가 왕실을 부끄럽게 만든다고 생각하였고, 결국 중신들의 주청대로 사형에 처했다.
이렇듯 지운은 왕자 신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왕자로 살지 못했고, 스스로 왕자로 살고 싶어 발버둥을 쳤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목이 달아났으니, 이 모든 것이 정종과 그의 어미 기매의 업보가 아니고 무엇이랴.
작가
■ 용어설명 - 인덕궁
정종이 아우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 살던 궁가. 정종이라는 왕명을 대신해 불리던 왕족의 별칭인 궁호(宮號)이기도 하다. 1401년(태종 1년) 태상왕이었던 태조가 머물던 덕수궁과 함께 개경에 건설됐으나 1405년(태종 5년) 태종이 다시 한양으로 환도하면서 한양성 서대문 안으로 옮겨졌다. 정종은 왕위에서 물러난 후 죽을 때까지 인덕궁에 머물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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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의 아들 중에는 왕세자가 되려다 죽임을 당한 불노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산 아들도 있었다. 지운이라는 인물이었다.
정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뒤에 인덕궁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한 여인을 품었다. 그녀는 인덕궁 소속의 여종 기매였고,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바로 지운이었다.
그런데 기매는 지운을 낳은 뒤에 궁궐을 발칵 뒤집을 만한 섹스 스캔들에 휘말렸다. 이 사건에 대해 실록은 태종 17년(1417년) 8월 8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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