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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지난 11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입장과 동시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전시장이 아닌 뮤지엄숍으로 달렸다. 목적은 단 하나, 이날 추가 물량이 재입고된 ‘까치 호랑이’ 배지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소위 말하는 ‘오픈런’(개장 전 줄서기)이다. 그 틈바구니엔 외국인들도 있었다. 백화점도, 팝업 스토어도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에서 벌어진 진풍경이다.
“최근 방탄소년단(BTS) 멤버 RM 제대 소식으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찾 땅담보대출 으러 온 외국인들을 종종 봤어요. 하지만 오늘처럼 문 열기 전부터 줄을 서고, 입장과 동시에 숍이 꽉 들어찬 광경은 다른 차원이었죠. 박물관에서 문화 소비를 즐기는 방식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실감합니다.”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은 이날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굿즈 사려고 박물관 개관하자마자 뛰어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는 신한은행 적금 건 난생 처음이었다”며 이같이 놀라워했다.

K-팝 팬덤과는 결이 다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사자보이즈’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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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판매하던 갓 관련 굿즈가 일시품절 됐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대한민국 ‘국가대표’ 박물관의 난데없는 굿즈 대란 배경에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미국신용불량 방영 일주일 만에 미국을 포함해 세계 41개국에서 영화 부문 1위에 오른 뒤 그 불씨가 굿즈로 옮겨붙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판매하는 ‘까치 호랑이’ 배지를 비롯해 ‘갓’ 볼펜과 키링, 브로치가 줄줄이 품절된 것.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리 잘나가던 상품들이 아니었지만, 박물관에 호랑이와 갓을 모티브로 한 케데헌 캐릭터를 닮은 굿즈가 있다는 소식이 입소 머니홀릭 문이 나며 박물관 대박 상품이 됐다.
1인당 굿즈 구매 한도가 3개로 제한됐는데도 추가 상품이 입고될 때마다 몇 분 만에 품절된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온라인숍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도 영화 공개 이전 7000명에서 공개 후 50만 명으로 무려 71배 이상 뛰었다. 굿즈 매출액 역시 올해 상반기 현재 전년보다 34% 증가한 115억 원을 기록했다. 김 본부장은 “날마다 역대 최대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부담되지 않는 가격도 한몫했다. 박물관이 판매하는 상품은 기획사들이 제작한 K-팝 굿즈와는 성격이 판이하다. 수익 극대화가 판매 주목적이 아니라서다. 예컨대 스타벅스와 협업해 출시된 걸그룹 블랙핑크 키링이 2만 원을 넘지만, 박물관이 판매하는 갓 키링 가격은 60% 수준에 머문다. 김 본부장은 “‘누구나 문화유산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게 한다’는 공공성에 방점을 두고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높은 마진을 붙이는 구조가 아니다. 수익도 상품 연구개발(R&D) 비용으로 다시 사용된다”라고 설명했다.

K-유물도 ‘팝’처럼…케데헌이 바꾼 소비법




국립중앙박물관이 판매하는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번 굿즈 대란에서 주목할 대목은 BTS 멤버 RM이 구매해 불티나게 팔린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열풍과 소비 양상이 뚜렷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팬덤을 중심으로 유물의 미적 가치를 소장하는 ‘정적 소비’가 주를 이뤘다.
반면 이번 케데헌 굿즈 열풍은 경쾌하고 적극적이다. 배지나 키링을 가방이나 옷에 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하며 즐기는 ‘참여형 소비’가 특징이다. 한국의 유산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을 넘어, 대중문화 속에서 ‘팝’ 캐릭터로 변모하며 일상 속 놀이로 확장된 모습이다.
케데헌에 등장하는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가 민화 ‘작호도’에서 차용된 캐릭터라는 점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반응도 잇따르고 있다. 전통문화가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대중문화의 소비 문법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 등장한 갓. [넷플릭스]





엠넷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 한국팀 범접의 메가 크루 미션에서 등장한 갓. [유튜브 더춤]


‘갓’은 특히 흥미롭다. 지난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을 시작으로, 올해 인기리에 무대를 선보인 창작 발레 ‘갓’, 엠넷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 한국팀 범접의 메가 크루 미션까지, 존재감이 재조명될 때마다 인기가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킹덤 공개 직후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존 아너 제이컵스가 트위터에 “킹덤 시리즈에서 모든 배역들이 다 다른 모자를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 줄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글을 남겨 화제가 됐을 정도다. 케데헌에서도 관객들의 영혼을 빨아들이기 위한 무대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사자보이즈’의 아이템은 단연 갓이었다. 이처럼 갓은 조선 시대 양반이 쓰던 전통 모자를 넘어서 날렵한 실루엣에 장식미를 갖춘 현대적 문화 코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그동안 문화유산을 어렵게 여겼던 세대가 2030대라고 생각해 친근하게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굿즈를 만들고자 했다”며 “하지만 이번 케데헌 굿즈 대란을 보며 한국의 전통 그 자체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앞으로 상품을 더 다양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