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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업자 사이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대개 경쟁하는 관계일 때가 많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속사정을 서로 빤히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동업자 사이에서 인정받는 정도를 넘어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이지요. 종교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22년 6월 입적한 연관(然觀·1949~2022) 스님은 ‘스님들이 좋아하고 인정하는 스님’이었습니다.



신한카드자동차할부금융 2022년 입적한 연관 스님이 마지막까지 번역 원고를 다듬던 '마음의 노래, 주심부' 표지. /불광출판사


평생을 경전 공부와 간화선 수행으로 일관한 연관 스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고(遺稿)가 도반과 후학들의 2년여에 걸친 노력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됐습니다. ‘마음의 노래, 주심부(註心賦)’(불 24시간대출 광출판사)입니다.



지난 6월 15일 부산 관음사에서 연관 스님의 3주기 추모 및 유고집 봉헌 법회가 열렸다. /불광미디어


지난 6월 15일 부산 관음사에서는 ‘연관 스님 3주기 추모 및 유고집 주심부 발간 봉정법회’ 조금 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연관 스님을 추모하는 동시에 그의 유고 ‘주심부’의 번역본을 부처님에게 올리는 자리였습니다.
연관 스님은 경남 하동 출신으로 1969년 1월 우봉 스님을 은사로, 병채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같은 해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재적 본사, 일반인으로 든든학자금 일시상환 치면 본적은 직지사입니다.
그는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직지사 황악학림에서 당대의 대강백 관응 스님에게 경학을 배웠으며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조계종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을 맡아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특별히 관응 스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하지요. 이후로는 문경 봉암사를 비롯해 기기암, 칠불사, 벽송사, 백양사 등 여러 선원 지급수수료 에서 안거(安居) 수행에 매진했지요.
앞서 연관 스님에 대해 ‘스님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스님’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스님이 입적하기까지 과정과 장례 절차를 보면 그가 얼마나 스님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연관 스님 3주기 추모 법회에서 유고집 '마음의 노래, 주심부'를 부처님에게 봉헌하고 있다. /불광미디어


연관 스님은 마지막까지 경북 문경 봉암사의 선덕(禪德)으로서 선승들의 수행을 지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 팬데믹 시절 독감이나 코로나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처럼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세는 돌이키기 힘든 상태였고요. 스님은 치료에 매달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병을 받아들였습니다. 거처를 봉암사에서 관음사로 옮겼습니다. 당시 봉암사는 여름철 3개월간의 집중 수행 기간인 ‘하안거’ 중이었습니다. 봉암사는 알려진 것처럼 1년 중 부처님오신날 외에는 일반 개방을 하지 않고 참선수행에만 집중하는 특별한 사찰입니다. 연관 스님은 자기 때문에 선승들의 수행이 방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부산 관음사는 요양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관음사로 옮긴 이후 연명 치료는 거부하고 입적 10여 일 전부터는 곡기(穀氣)를 끊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사나흘 동안은 물조차 마시지 않았고요. 그렇게 스님이 마지막을 보내고 입적한 부산 관음사는 송광사의 부산 분원입니다. 이곳에서 영결식을 마친 스님의 법구는 경남 양산 통도사로 옮겨져 다비(화장)를 했습니다. 재적 본사가 아님에도 송광사는 마지막 거처를, 통도사는 다비장 장소를 제공한 것입니다. 또 추모 행사도 관음사에서 열린 것이지요. 불교계를 위해 헌신한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여러 사찰이 기꺼이 함께한 셈입니다.
저는 연관 스님이 입적하기 얼마 전에 광주 무각사 주지 청학 스님에게 소식을 들었습니다. “연관 스님이 위독한데 곡기를 끊고 있다”는 이야기였지요. 청학 스님은 늘 무각사 경내를 벗어나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런 분이지만 연관 스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부산까지 한걸음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생전에 연관 스님과 절친했던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 법인 스님도 관음사로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나눴고요.



연관 스님과 인연을 맺은 17명의 인사가 추모의 마음을 담아 펴낸 '놓아 버려라' 표지. /삼인출판사


스님이 입적한 후엔 추모가 잇따랐습니다. 과거 봉암사 주지를 지낼 때 함께 수행했고 찬불가 보급 운동을 벌이는 함현 스님은 추모곡을 만들었고, 연관 스님과 인연을 맺었던 시인, 작가, 스님, 목사, 신부, 산악인 등 17명은 ‘놓아 버려라’는 추모 헌정 문집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은 스님들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연관 스님이 번역한 '만성동귀집 강의'. 스님 입적 후인 2023년 출간됐다. /사유수출판사


그렇게 세상을 떠난 연관 스님이 마지막까지 다듬던 원고가 바로 이번에 출간된 ‘주심부’입니다. ‘주심부’는 중국의 오대-북송 초에 걸쳐 활동한 영명연수(904~975) 선사가 저술한 ‘종경록’의 핵심 가르침을 축약하고 대중화를 위해 펴낸 책입니다. 당시는 불교가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으로 나뉘면서 경전의 가르침은 소홀하고 좌선에 집착하는 풍토가 만연했다고 합니다. 영명연수 선사는 교와 선 그리고 염불까지 서로 구분하지 않고 원융 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가 100권에 이르는 ‘종경록’이었고, 이를 압축한 것이 ‘주심부’였다고 합니다. 앞서 지난 2023년에도 스님의 유고가 한 권 더 나왔습니다. ‘만선동귀집 강의’(사유수출판사)입니다. 역시 영명연수 선사가 지은 책으로 염불선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 ‘만선동귀집’을 대만의 스님이 강의 형식으로 정리한 것을 연관 스님이 번역해 유고로 출간됐습니다. 관음사 회주인 지현 스님의 부탁으로 연관 스님이 번역을 맡았다고 하지요. 연관 스님은 말년에 영명연수 선사의 대표작 번역에 집중했던 것입니다. 연관 스님은 수행자로서 영명연수 선사처럼 교와 선, 염불까지 회통하는 ‘통불교’를 지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연관 스님은 병 때문에 ‘주심부’에서 마지막 3쪽 분량의 번역은 마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 각주도 달지 못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번역자 서문도 쓰지 못했지요. 그 원고는 USB에 저장돼 평생의 도반인 수경 스님이 보관하고 있었고요. 그 USB는 연관 스님 입적 후 제자들에게 전달돼 오경, 오성, 법인, 정묵, 유연, 덕인, 홍현 스님 등이 2년여에 걸쳐 각주를 달고 문장을 다듬어 이번에 974쪽에 이르는 대작으로 출간하게 됐다고 합니다.
연관 스님은 장례 때 위패에 ‘비구(比丘) 연관’ 넉 자만 남겼습니다. 사리탑(부도)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서운한 마음에 위패에도 몇 자 더 적고, 사리탑도 남기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수경 스님이 단호하게 “그런 건 연관의 가풍(수행 자세)이 아니다”라고 정리했다지요. 장례 후에는 그가 생전에 모았던 원고료와 주변에서 보탠 금액으로 사단법인 ‘세상과함께’를 통해 미얀마 오지에 여학생 기숙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연관 스님의 유고집과 미얀마 여학생 기숙사가 그의 사리인 셈입니다.
실상사 화엄학림에서 연관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고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법인 스님(전남 화순 불암사 주지)은 “수행자들이 이론적으로는 생사일여(生死一如)를 이야기해도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쉽지 않다”며 “연관 스님은 마지막까지 연명(치료)하지 않고 순리에 따르고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 진정한 생사일여를 보여주셨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