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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갈이를 하느라 특유의 거대한 뿔을 떨어낸 말코손바닥사슴./Maine Wildlife Park Facebook


현지 당황스러우시죠? 보는 사람도 당황스러운데 사진찍힌 녀석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우선 확실히 해둘 것은 이 말코손바닥사슴이 코뿔소처럼 강제로 뿔을 절단당한 비극적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녀석의 눈은 공포와 절망이 아닌 당혹과 부끄러움의 감정을 담고있어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하필 이럴 때... 부끄럽소이다. 은행 금리 담합 그래요. 나 원래 이렇게 산다우.” 거대한 덩치에 걸맞는 넙대대한 뿔을 가진 말코손바닥사슴을 비롯해 지구상의 모든 사슴은 1년에 한 번씩 뿔갈이를 합니다. 열 두 달 동 쑥쑥 자라며 가지를 친 웅장한 뿔을 단박에 훌훌 털어내며 떨궈내고 휑한 앞통수와 민머리를 드러내는 순간이에요. 쑥 빠진 자리에는 이제 다시 뿔이 솟아오르기 시작하겠지만 그 때까지는 이렇게 전부원가계산 뿔빠진 사슴 신세로 당분간 살아가야 할 처지입니다.



뿔갈이 하느라 거대한 뿔이 떨어진 말코손바닥사슴./Maine Wildlife Park


이렇게 해마다 떨어졌다 다시 자라길 반복하는 사슴의 뿔을 영어로는 앤틀러(a 별내지구한화꿈에그린 ntler)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일반적인 젖먹이 짐승의 뿔로 알고 있는 혼(horn)과는 애당초 다릅니다. 짝수 발굽을 가진 젖먹이짐승을 통칭해서 우제류라고 부르는데요. 이 거대한 초식짐승 그룹은 하마파·기린파·영양파·염소파·소파 등 여러 문파로 나뉘는데요. 그 중에 사슴파를 규정지어주는 것이 바로 이 사슴뿔, 앤틀러예요. 앤틀러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여느 개인채무자 짐승들의 뿔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눈에 띕니다. 우선 첫째로 앞서 말했던 것처럼 연 1회 등 주기적으로 뿔갈이를 한다는 점입니다. 덩치가 크고 나이가 많은 수컷일수록 우람하고 화려하게 가지를 친 뿔을 달고 있는만큼 태어날때부터 고이 자라온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사슴의 뿔은 수컷들끼리 힘겨루기를 할 때 쓰이지만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와피티사슴 수컷이 뿔로 박치기를 하고 있다./Todd Frerichs/USFWS


하지만 변함없이 한 해 중 때가 되면 후두둑 떨어지며 그 자리에 뿔이 자라며 가지를 칩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덩치가 클수록 뿔이 자라서 가지를 치는 속도에 탄력이 붙습니다. 가령 붉은 사슴 수컷의 경우 한 살이 됐을 때는 양옆으로 가지르 치지 않은 브이(V)자 형의 뿔이 자라나다 뚝 떨어지며 뿔갈이를 합니다. 그런데 세살 정도 되면 길이도 길어지고 두 세 개씩 잔가지를 칩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길고 잔가지로 덮인 뿔을 갖게 돼요. 여덟살이 된 수컷은 적어도 한쪽당 대 여섯개의 잔가지를 친 전형적인 사슴뿔을 갖게 됩니다. 뿔갈이를 시작한 후 사슴뿔이 돋는 과정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냥 딱딱한 뿔이 돋는게 아니라 우단과 같은 부드러운 살갗으로 둘러싸이면서 자라납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우단 단계(velvet phase)라고도 해요.



말코손바닥사슴의 뿔이 자라면서 살갗이 벗겨지고 있다./Utah Division of Wildlife Resources


영양이나 소의 뿔과 사슴뿔은 기본적으로 모두 뼈와 같은 재질로 돼있습니다. 하지만 단단한 케라틴 재질로 둘러싸인 소·영양뿔과 달리 사슴뿔은 살갗에 덮여 혈액을 공급받아 성장이 촉진됩니다. 그렇게 뿔이 쭉쭉 자라나면 비로소 허물을 벗듯이 뿔을 둘러쌌던 살갗이 흐물흐물 벗겨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우단같던 살갗을 떨쳐낼 때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뿔 주위가 핏빛으로 흥건해지기도 해요. 이렇게 역동적인 모습으로 자라나는 뿔은 대개는 수컷의 전유물입니다. 더러는 순록처럼 암수모두 뿔이 돋기는 하지만, 사슴뿔 앤틀러 근본적으로 수컷의 물품이라는 성격이 뚜렷합니다. 그건 바로 존재의 목적과도 연관이 있어요.



전형적인 혼(horm)을 가진 큰뿔양. 사슴뿔인 앤틀러와 다르게 평생 빠지지 않고 자란다./National Park Service


사슴뿔은 번식철 치열한 짝짓기 경쟁이 펼쳐질 때 암컷에게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도구입니다. 물론 더 많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치열한 박치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암컷은 더 커다란 뿔을 가진 수컷에 관심을 가집니다. 곰이나 퓨마, 늑대 등 천적을 물리칠 때 뿔을 앞세우며 반격을 하기도 하지만, 사슴뿔의 복잡다단한 구조는 기본적으로 전투용 무기로 보기에는 효과가 떨어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번식철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수컷들이 세력 싸움 과정에서 그 거대한 뿔을 앞세우고 박치기로 힘을 겨룹니다.



흰꼬리사슴의 뿔이 자라남에 따라 살갗이 벗겨지고 있다./Pennsylvania Game Commission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로 뿔이 얽혀서 풀리지 못하고 그렇게 원치 않게 ‘한몸’이 된 두마리의 수컷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한몸이 된 상태에서 두 마리가 서서히 횡사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납니다. 먹을 것을 찾아헤매던 곰이나 늑대에겐 그야말로 운수 대통이 터진날이 되겠죠. 사슴 뿔이 ‘무기’가 아니라 ‘도구’의 성격이 더 강한 까닭입니다.그렇게 뿔을 통해 암컷에게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며 뿔을 앞세워 수컷들과 들이받으며 복작복작한 짝짓기 시즌이 지나고 기진맥진해진 수컷들은 약속이나 한 듯 머리를 부르르 떨고 뿔을 후두두 떨쳐내며 다음 시즌을 기약합니다. 강아지보다 조금 큰 앙증맞은 초미니사슴 푸두부터 집채만한 몸집의 말코손바닥사슴까지 거의 모든 사슴족들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뿔을 키워내고 떨쳐냅니다.



뿔대신 어금니를 발달시킨 고라니./BBC Springwatch Facebook


하지만 세상 만물에 예외없는 법은 없듯, ‘사슴뿔의 법칙’을 적용받지 않는 거의 유일한 종류가 있습니다. 바로 고라니예요. 고라니의 수컷은 사슴족의 전매특허인 뿔을 포기하는대신 다른 형태로 변용했습니다. 바로 이 짐승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기다란 송곳니예요. 위풍당당하게 가지를 친 거대한 사슴뿔 대신 역삼각형으로 아래를 향해 날카롭게 벼려진 송곳니를 수컷의 상징으로 드러냅니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고라니를 ‘뱀파이어 사슴’이라고도 하죠. 고라니는 도대체 왜 뿔 대신 송곳니를 기른 것일까요? 아마도 여느 사슴보다 훨씬 왜소한 몸집에 천적을 피해 요리조리 잽싸게 움직이려면 아무래도 뿔은 거추장스러울 테니 송곳니로 변화시킨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아메바부터 침팬지까지, 사람 빼고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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